한 대통령이 대법원을 채우는 구조 — 싸우지 않는 사법부 ②
대통령 한 명이 대법관을 대거 임명한다면
대법관의 임기는 6년이고, 대통령의 임기는 5년이다. 계산을 하면, 정원 14명 중 13명 안팎의 임기가 한 대통령의 재임 중에 만료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그랬고, 윤석열 대통령도 파면되지 않았다면 그랬을 것이다. 어느 대통령이든 대법원의 대다수를 임명할 기회를 갖는다. 이것은 헌법이 설계한 주기다.
그런데 정원이 14명에서 26명으로 바뀌면, 한 사람이 임명할 수 있는 대법관의 숫자는 전무후무한 역대최고 이다.
법원조직법 개정(법률 제21451호)
대법관 정원 14명 → 26명, 2026-03-12 공포
증원분 12명: 4명씩 세 차례(2028·2029·2030), 모두 이재명 대통령 임기 내
증원분 12명 + 기존 교체분(언론 추정)– 역대 정원 변동 최대 폭: 1963년 +4명. 이번은 +12명
본회의 표결: 재석 247명, 찬성 173명, 반대 73명, 기권 1명
<이 글의 질문 >
적체 해소와 인적 구성 교체를 한 법률로 묶었을 때, 전자의 명분이 후자의 함의를 상쇄할 수 있는가
법률이 허용하는 것

「법원조직법」 개정(법률 제21451호, 2026-02-28 본회의 통과, 2026-03-12 공포)은 대법관 정원을 14명에서 26명으로 늘렸다(법률신문, 2026-02-28). 부칙은 12명을 4명씩 세 차례로 나누어 증원하도록 정했다. 2028년 3월 13일에 4명, 2029년 3월 13일에 4명, 2030년 3월 13일에 4명.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2025-06-04~2030-06-03) 안에 12명 전원이 들어찬다.
여기에 기존 대법관의 교체가 겹친다. 임기 6년의 순환에 따라 이 대통령 재임 중에 만료되는 현직 대법관이 있고, 노태악 전 대법관의 퇴임으로 공석 1석이 이미 존재한다(경향신문, 2026-03-03). 조희대 대법원장은 1957년 6월 6일생(보도 기준)으로, 대법원장 정년(70세)에 따라 2027년 6월에 퇴임한다.
이 모든 것을 합산하면 최대 22명이라는 수치가 나온다(YTN, 2026-03-01). 단순히 계산하면 현재 대통령은 혼자서 12명을 임기내에 임명할 수 있다.
역대 정원 변동과의 차이
대법관 정원을 건드린 정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49년 제정 당시 대법관은 9명이었다. 1963년 13명으로 늘었고, 1969년 16명이 됐다가, 1981년 13명으로 줄었다. 1988년 14명이 된 뒤 2005년에 한 차례 13명으로 줄고, 2007년 다시 14명으로 돌아왔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국가법령정보센터). 77년간 이어진 정원 변동의 최대 폭은 1963년의 +4명이었다.
이번은 +12명이다. 직전 최대치의 세 배다.
규모만이 아니다. 속도도 다르다. 1963년의 +4명은 대법원장을 포함한 총원이 9명에서 13명으로 바뀐 것이다. 그 4명은 한꺼번에 늘었다. 이번의 +12명은 4명씩 세 차례로 나뉘었지만, 세 차례 모두 한 대통령의 임기 안에 들어온다. 분할 시행이 정치적 완충인 것처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한 명의 대통령이 12석 모두를 채운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과거에도 대법관 증원 논의는 있었다. 1994년 대한변호사협회가 24명을 요구했고, 2004년 노무현 정부의 사법개혁위원회가 검토했고, 2010년 한나라당이 24명안을 제시했고, 2011년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가 20명에 합의했다(서울신문, 2026-02-28, 보도 종합). 네 차례 모두 무산됐다. 논의 자체는 여야에 걸쳐 있었다. 증원론의 원죄가 한쪽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앞선 네 차례와 이번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있다. 앞의 넷은 모두 상고심 적체 해소라는 단일 맥락에서 나왔다. 이번은 법왜곡죄(법률 제21450호), 재판소원(법률 제21452호), 내란전담재판부법(법률 제21306호), 검찰 폐지(법률 제21065호·제21490호·제21491호·제21857호)와 동시에 진행됐다. 대법관 증원이 홀로 서 있었다면 과부하 해소책으로 읽힐 수 있었다. 사법부의 인적·제도적 구성을 한꺼번에 바꾸는 패키지의 한 조각으로 놓이면, 같은 숫자가 다른 의미를 갖는다.
대법원장이라는 변수
대법관은 대법원장이 제청하고 대통령이 임명한다(「법원조직법」 제42조 제2항). 대법원장은 대통령이 국회 동의를 얻어 임명한다(헌법 제104조 제1항). 제청권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대법원의 구성이 달라진다.
조희대 대법원장의 정년은 2027년 6월이다. 그 후임은 이재명 대통령이 임명한다. 증원분 12명의 제청은 그 후임 대법원장의 몫이다. 기존 임기 만료에 따른 교체분도 마찬가지다.
구조를 정리하면 이렇다. 정원을 늘리는 법률이 이미 공포됐다. 대법원장 자리가 현 대통령 임기 안에 교체된다. 그 대법원장에게 증원분 전원의 제청권이 있다. 세 가지가 겹치면, 대법원의 의사결정 다수가 한 대통령의 임기 안에 형성된다.
이것은 음모론이 아니다. 법률의 문언이 허용하는 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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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강한 반론
대법관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증원되어야한다고 한다.
첫째, 상고 적체는 실재한다. 대법원에 접수되는 사건은 연간 5만 6천 건에 달한다. 대법관 1인당 처리 사건 수는 OECD 국가 중 최상위권이라는 평가를 받는다(2025 사법연감, 보도 종합). 정원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은 사건 수치에 기반한 것이다.
둘째, 증원론은 보수 진영도 제기했다. 2010년 한나라당이 24명안을, 2011년 여야 합의체가 20명안을 내놓았다. 대법관 증원 자체를 좌파의 사법부 장악 시도로 규정하면 과거의 자기 제안까지 부정해야 한다.
셋째, 대법관 임명은 국회 동의를 거친다. 대통령이 후보를 낙점해도 국회 인사청문회와 본회의 동의라는 여과장치가 있다. 자동으로 심어지는 구조는 아니다.
적체도 실재하고, 증원론이 보수에서 먼저 나온 것도 맞고, 국회 동의라는 여과장치도 있다. 그런데 이 반론들은 한 가지를 묻지 않는다. 적체 해소와 인적 구성 교체가 왜 같은 법안에 담겼는가.
반론이 닿지 않는 곳
상고 적체 해소와 대법원 인적 구성은 별개의 문제다. 적체를 푸는 방법은 정원 증원만이 아니다. 상고허가제, 고등법원 상고부, 대법원의 이원적 구성 등 2004년 사법개혁위원회가 검토한 네 가지 방안 중 증원은 하나였고, 당시 채택된 것은 고등법원 상고부 설치였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증원이 유일한 해법이라면 왜 이전의 네 차례가 모두 무산됐는가. 무산된 것은 증원이 필요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인적 구성 변동의 정치적 함의가 적체 해소의 행정적 편익보다 위험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보수 진영의 과거 제안은 공정한 지적이다. 그러나 과거 제안이 모두 실패한 이유도 함께 봐야 한다. 시민단체, 법조계, 야당이 번번이 반대한 것은 대법관 정원이 가진 이중성 때문이다. 사건 처리 효율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사법부 권력 구성의 문제다. 효율만 보면 늘려야 하고, 구성만 보면 늘리면 안 된다. 과거의 보수 진영이 제안하고 좌파 진영이 반대한 것이나, 지금 좌파 진영이 제안하고 보수 진영이 반대하는 것이나, 같은 이중성의 양면이다.
국회 동의는 여과장치가 맞다. 그러나 여과장치의 작동 조건을 봐야 한다. 22대 국회의 의석 분포에서 여당 단독으로 대법관 임명동의안을 처리할 수 있는가. 법원조직법 개정안 표결(재석 247명, 찬성 173명, 반대 73명, 기권 1명)이 보여주는 것은 다수당이 단독 의결력을 가진 구조에서 인사청문이 실질적 여과장치로 작동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법률신문, 2026-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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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쓰면 끝나는 도구
소웰은 《갈등의 비전》(1987)에서 제도의 설계자가 아니라 제도 안에서 행동하는 사람의 유인을 보라고 했다. 대법관 증원의 유인 구조를 보자.
정원 14명 체제에서 대통령은 임기 중 13명 안팎을 임명한다. 이것은 어느 대통령이든 같다. 다음 대통령도 같은 기회를 갖는다. 주기가 반복되므로, 한 대통령의 임명이 사법부를 영구적으로 바꾸지 않는다. 이것이 6년 임기제의 자체 교정 구조다.
중간 기관이 완충재로 작동하려면, 한 권력자의 의지로 그 구성이 한꺼번에 결정되지 않아야 한다.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1835)에서 사법부를 행정부와 개인 사이에 서는 바로 그 중간 기관으로 봤다. 6년 임기의 순환은 그 분산의 조건이다.
정원 26명 체제에서는 다르다. 12석의 증원은 한 번만 일어난다. 첫 번째 대통령이 채우면, 다음 대통령은 같은 기회를 갖지 못한다. 6년 뒤 임기가 만료되는 대법관을 교체하는 기회는 있지만, 정원을 두 배로 늘리는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

하이에크는 《자유헌정론》(1960)에서 법의 지배와 법에 의한 지배를 구별했다. 일반적이고, 예측 가능하며,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는 규칙이 전자다. 특정 결과를 얻기 위해 법을 도구로 쓰면 후자다. 시금석은 간단하다. 이 법률이 대통령이 바뀌어도 같은 효과를 내겠는가.
법왜곡죄는 다음 정부에서도 법관을 고발하는 도구가 된다. 재판소원은 다음 정부에서도 확정판결을 흔드는 도구가 된다. 그러나 대법관 12명 증원은 한 번 쓰면 끝이다. 이 대통령이 채운 26인의 대법원은, 이 대통령이 퇴임한 뒤에도 6년간 남는다.
26명 체제를 14명으로 되돌릴 수 있는가. 12명의 현직 대법관에게 "당신의 자리는 없어졌다"고 말해야 한다. 헌법이 보장하는 법관의 신분 보장(헌법 제106조)이 그 앞에 서 있다. 프리드먼은 《선택할 자유》(1980)에서 한 번 만들어진 정부 프로그램은 축소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했다. 26명은 되돌리기 어렵다.
남는 질문
대법관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 자체는 30년 넘게 이어져 왔다. 적체는 숫자로 확인되고, 재판 지연은 국민의 피해다. 이 문제를 방치하는 것이 사법부 독립을 지키는 길은 아니다.
그러나 적체 해소와 인적 구성 교체를 한 법률로 묶고, 그 법률을 사법부의 형사적·제도적·절차적 독립을 줄이는 다른 법률들과 동시에 통과시켰을 때, 적체 해소라는 명분만으로 인적 구성의 함의를 상쇄할 수 있는가.
대법관 증원이 상고 적체를 줄일 수 있다는 것과, 증원이 한 대통령에게 대법원 전체를 한 번에 채울 기회를 준다는 것은 둘다 맞는 말이다. 전자를 위해 후자를 감수하겠다는 판단이라면, 그 판단의 책임은 법안에 찬성한 173명에게 있다. 그러나 전자만 말하고 후자를 말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설명의 부재이고, 설명 없는 권력 이전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산술이다.
한 대통령이 대법원의 거의 전원을 임명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그 구조를 만든 법률은 이미 공포됐다. 법률이 허용하는 것은 법률이 의도한 것과 다를 수 있다. 의도와 관계없이, 산술은 이미 끝났다.
참고 출처
- 법률신문, 2026-02-28. 법원조직법 개정안 국회 본회의 통과. 표결: 재석 247명, 찬성 173명, 반대 73명, 기권 1명. 법률 제21451호, 2026-03-12 공포.
- YTN, 2026-03-01. 이재명 대통령 임기 내 대법관 최대 22명 임명 산정. 합계: 증원분 12명(법원조직법 부칙) + 공석 1명(노태악 전 대법관 퇴임) + 임기 만료 예정 대법관 + 대법원장. 개별 대법관 취임일은 대법원 공식 공표·관보로 대조하지 못한 추정치다.
- 경향신문, 2026-03-03. 노태악 대법관 퇴임, 대법원 13인 체제.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법원조직법」. 대법관 정원 변천: 1949년 9명 → 1963년 13명 → 1969년 16명 → 1981년 13명 → 1988년 14명 → 2005년 13명 → 2007년 14명. 2026년 개정분은 국가법령정보센터 원문으로 확인.
- 서울신문, 2026-02-28. 과거 증원 논의(1994년 변호사협회, 2004년 사법개혁위원회, 2010년 한나라당, 2011년 국회 특위) 포함.
- 2025 사법연감, 대법원. 대법원 연간 접수 사건 수치. OECD 국가 비교는 보도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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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의 정식 명칭·법률번호·공포일·시행일은 국가법령정보센터 원문으로 확인했다. 미확인 항목은 본문에 명시했다. 대법관 임명 산정의 22명은 언론 추정치이며, 개별 대법관의 취임일이 1차 출처로 확인되지 않은 한 확정된 수로 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