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왜곡죄가 만든 위축의 구조 — 싸우지 않는 사법부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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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왜곡죄가 만든 위축의 구조 — 싸우지 않는 사법부 ①

판결을 재판하는 법


법관은 재판을 할 때 두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법리와 사실관계. 이 두 가지만 고려하기 때문에 독립되었다고 한다.

2026년 3월 12일, 법관에게 세 번째 고려 사항이 생겼다. 바로 자기 판결이 형사 고발의 빌미가 되는지 여부다. 법전과 사실관계 위에 정치적 분위기라는 변수가 얹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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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보기>
법왜곡죄(형법 제123조의2) — 2026년 3월 12일 공포·즉시 시행– 시행 넉 달 집계: 접수 812건, 피의자 1만 2,892명, 송치 0건– 법관은 피의자의 4.1%. 경찰(27.4%)이 가장 많고, 신분 요건 미해당자가 61.5%

독일 법왜곡죄(형법 제339조) 유죄 판결: 연 1~2건

<이 연재의 질문 >
법관이 법전 대신 정치적 분위기를 읽기 시작할 때, 사법부에 무슨 일이 생기는가

조문의 윤곽

법왜곡죄(형법 제123조의2)는 2026년 2월 26일 본회의를 통과하고 3월 12일 공포·즉시 시행됐다. 형사사건의 법관·검사·수사직무 수행자가 위법하거나 부당한 이익을 주거나 권익을 해할 목적으로 세 가지 행위를 하면 10년 이하의 징역과 자격정지에 처한다.

형법 제123조의2 (법률 제21450호, 의안번호 대안 제2214935호)
제1호. 법령의 적용 요건이 충족되지 않음을 알면서 적용하거나, 적용할 법령임을 알면서 적용하지 않아 결과에 영향을 미친 경우. 단, 법령 해석의 합리적 범위에서 이루어진 재량적 판단은 제외한다.
제2호. 증거를 인멸·은닉·위조·변조하거나, 위조·변조된 증거를 알면서 재판·수사에 사용한 경우.
제3호. 폭행·협박·위계로 위법하게 증거를 수집하거나, 적법한 증거가 없음을 알면서 범죄사실을 인정한 경우.

이 구분이 중요하다. 법왜곡죄 전체를 "모호한 법"이라고 부르면 비판의 근거가 약해진다. 제2호와 제3호는 모호하지 않다. 증거 위조와 폭행에 의한 증거 수집은 기존 형법의 증거인멸죄·독직폭행죄와 겹치는, 처벌 요건이 명확한 행위다. "증거 위조 처벌이 어디가 모호하냐"고 되물으면 그만이다.

모호한 곳은 오직 제1호다. "합리적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는 조문에 없다. 사후에 정해진다. 판사가 소수 의견을 낼 때, 선례를 뒤집을 때, 권력에 불편한 판결을 쓸 때, "이것이 합리적 범위 안인가"를 자문해야 한다면, 그 자문 자체가 독립성의 훼손이다.

하이에크는 《자유헌정론》(1960)에서 법의 지배(Rule of Law)와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를 구별했다. 둘을 구별하는 실무적 기준은 간단하다. 적용받는 사람이 자기 행동이 처벌 대상인지 미리 알 수 있는가. 법왜곡죄 제1호에 대한 답은, 지금으로서는 "아니오"다.


의도한 대상과 실제 영향

이 법을 만든 쪽은 판사를 대상으로 했지만, 4달 뒤 경찰청 통계에서 다른 결과가 나왔다.

2026년 7월 24일 기준으로, 접수 812건, 피의자 1만 2,892명, 송치 0건이다(뉴스핌, 2026-07-24, 경찰청 집계).

신분 피의자 비중
경찰 3,535명 27.4%
검사 727명 5.6%
법관 529명 4.1%
검찰수사관·특별사법경찰 167명 1.3%
적용 대상 소계 4,958명 38.5%
적용 대상 아님 약 7,900명 약 61.5%

법관은 4.1%다. 가장 많은 쪽은 경찰이고, 그보다 더 많은 것은 이 법의 적용 대상조차 아닌 사람들이다. 법왜곡죄는 법관·검사·경찰 같은 특정 직군만 처벌할 수 있는 법이다. 해당 직군이 아닌 사람은 고발해도 처벌할 수 없다. 그런데 피의자의 6할 이상이 처음부터 처벌 대상이 아닌 사람들이다.

하이에크가 지적했듯, 법을 만드는 사람은 그 법이 어떻게 쓰일지 안다고 믿는다. 그러나 법이 시행되는 순간, 실제로 법의 영향을 받는 것은 수만 명의 개인이다. 그들이 법을 어떻게 쓸지는 입법자가 정할 수 없다.

입법자는 법관을 대상으로 삼았지만, 실제 영향은 지구대와 수사과에 집중되었다.


위축 현상은 숫자로도 보인다

법원행정처는 태스크포스를 꾸려 소속 법관의 형사 방어를 돕는 직무소송 지원센터 설립을 검토했다. 변호사 자격을 가진 사무관 충원도 계획에 포함됐다(파이낸셜뉴스, 2026-05-11). 재판을 하는 기관이 재판한 사람을 변호할 조직을 따로 두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판단 자체가 현재 사법부의 분위기를 보여준다.

형사재판부 근무를 기피하는 현상도 보도됐다(같은 기사). 민사·가사 사건에는 법왜곡죄가 적용되지 않는다. 형사재판부에 앉아야만 이 법의 적용 대상이 된다. 합리적 법관이라면 어느 재판부를 선호하겠는가.

시행 7개월째, 한석훈 연세대 겸임교수(전 대전고법 부장판사)는 문화일보 지면에서 구성요건 명확화를 요구했다(문화일보, 2026-08-19). 법관이 "합리적 범위"의 경계를 알 수 없는 상태로 재판에 임해야 하는 현실이 문제를 키운다는 진단이었다.


공소취소 수렴 구조

여기까지가 법왜곡죄 자체를 분석한 것이다. 이 연재가 묻는 것은 한 걸음 더 나간다. 신설된 "법왜곡죄"는 현재 어떤 상황과 맞물리고 있는가?

현직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이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대법원의 판단을 따라 유죄를 선고하면, 피고인 측은 그 판결이 "법령 해석의 합리적 범위"를 벗어났다고 주장할 수 있다. 법왜곡죄 제1호의 고발 사유가 열린다.

물론 그 고발이 송치될 가능성은 낮다. 대법원이 유죄 취지를 밝혔으니 하급심이 그에 따른 것을 법왜곡이라 보기 어렵다. 그러나 가능성이 낮다는 것과 가능성이 없다는 것은 다르다. 812건 접수, 0건 송치라는 숫자가 증명하듯, 고발 자체는 제한 없이 가능하고 피의자로 이름이 오르는 것은 막을 수 없다.

법관의 합리적 선택을 따져보자. 유죄를 선고하면 고발 가능성이 열린다. 무죄를 선고하면, 대법원의 파기환송 취지에 반하므로 상고심에서 다시 파기될 수 있지만, 형사 고발의 대상은 되지 않는다. 법전만 읽는 법관은 대법원의 판단을 따른다. 법전 위의 정치적 분위기까지 읽는 법관은 계산을 시작한다.

사법부가 이런 고민을 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그래서 "싸우지 않는 사법부"라고 하는 것이다.


검찰 축소와 상호작용한다면

법왜곡죄가 재판을 위축시키는 동안, 같은 시기에 진행된 검찰 기능 축소는 수사와 공소 유지를 약화시킨다. 2026년 10월 2일 검찰청이 폐지되고 공소청으로 전환되면, 검사의 직접 보완수사 근거가 사라진다(「공소청법」 등 관련 3법, 국가법령정보센터).

법왜곡죄와 검찰 축소가 겹치면 수사·공소·재판 세 단계 모두에서 "싸우지 않는" 쪽이 안전한 선택이 된다.

예시를 들어보자.

수사 단계: 경찰이 법왜곡죄의 최대 대상(3,535명)이므로 적극 수사를 기피한다.
공소 단계: 공소청 검사는 수사지휘권 없이 경찰이 보내준 기록만으로 공소를 유지해야 한다.
재판 단계: 법관은 유죄 선고 시 형사 고발 가능성을 계산한다.

수사관은 파지 않고, 검사는 버티지 않고, 판사는 싸우지 않는다. 공소취소를 공식으로 추진하지 않아도, 공소가 스스로 힘을 잃는 구조가 형성된다.


독일이라는 거울

법왜곡죄를 옹호하는 쪽은 독일 형법 제339조를 든다. 독일에서도 법관의 의도적 법왜곡을 처벌한다는 것이다.

사실이다. 그러나 두 가지 차이가 있다(서울신문, 2026-02-27).

하나는 문턱의 높이다. 독일에서 법왜곡죄 유죄 판결은 한 해 1~2건이다(같은 기사). 법원이 요건을 극도로 좁게 해석한다. 한국은 유죄는커녕 송치조차 없으니 문턱을 비교할 자료가 없다. 다만 독일이 판례로 반세기에 걸쳐 세운 그 문턱을, 한국은 조문 하나의 단서("합리적 범위")로 대신한다.

다른 하나는 제도의 토대다. 독일은 기소법정주의를 택해 검사가 요건을 갖춘 사건을 기소할 의무를 진다. 기소 여부가 재량이 아니므로, 기소를 법왜곡 심사 대상으로 삼는 논리가 성립한다. 한국은 기소편의주의다. 검사의 기소 재량을 법이 인정한다. 기소할지 말지를 검사가 판단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법왜곡죄는 그 판단이 잘못됐을 때 처벌하겠다는 법이다. 문제는, 검사가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시점에는 그것이 정당한 재량인지 법왜곡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나중에 누군가 문제를 제기해야 비로소 판가름이 난다.

같은 이름의 법을 만들었다고 같은 문턱을 세운 것은 아니다. 독일을 근거로 드는 쪽은 이 두 차이를 함께 설명해야 한다.


법왜곡죄라는 법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니다

이 법이 필요하다는 주장에도 근거가 있다.

여과장치가 작동했다.
법왜곡죄 1호 고발, 즉 조희대 대법원장과 박영재 대법관을 대상으로 한 건은 서울경찰청이 2026년 7월 2일 각하했다. 문제된 판결이 법 시행 전인 2025년 5월 1일에 선고돼 형벌 불소급 원칙상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였다(경향신문, 2026-07-15). 정치적으로 가장 무거운 사건에서 수사기관이 헌법 원칙을 들어 걸러냈다.

사법 불신은 실재한다.
한국법제연구원의 2025년 국민법의식 조사(전국 성인 3,400명)에서 "법관의 재판이 외부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응답은 44.7%에 그쳤고, 2023년(56.8%)보다 12.1%포인트 하락했다(한국법제연구원, 2025). 재판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는 시민이 많고, 불만을 표출할 절차가 부족하다는 목소리도 크다. 법왜곡죄는 그 불신에서 나온 법이다.

면책 단서가 있다.
"법령 해석의 합리적 범위에서 이루어진 재량적 판단"은 제외한다는 단서가 제1호에 명시됐다. 무한정 처벌하는 구조가 아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각각이 맞다고 해서, 이 법이 치르는 비용까지 사라지지 않는다.

여과가 작동했다고 해서, 여과 과정에서 이미 지출된 비용이 사라지지 않는다.
1만 2,892명이 피의자로 기록되는 과정에 든 시간과 경찰 인력은 이미 지출됐다. 불신이 실재한다고 해서, 불신에 기반해 만든 제도가 불신을 해소한다는 증거는 없다. 면책 단서가 있다고 해서, 그 경계가 사전에 예측 가능해지지 않는다. 한석훈 교수가 시행 7개월째에 구성요건 명확화를 요구한 것은 이 단서가 충분히 작동하지 않는다는 현장의 판단이다(문화일보, 2026-08-19).

누구의 돈으로, 누구를 위해, 누가 결정하는가. 송치 0건을 만들어내기 위해, 경찰 인력이 812건을 처리했고 1만 2,892명의 이름이 피의자로 올랐다. 그 비용은 납세자가 냈다. 이 비용을 부담해야 할 쪽은 고발당한 이들이 아니라 이 법을 설계한 이들이다.


우리는 무엇을 물어야 하는가

법왜곡죄는 법관 개인의 판결을 형사 고발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이것이 첫 번째 메커니즘이다. 법관이 법전 대신 정치적 분위기를 읽기 시작할 때, 사법부는 싸우지 않는 사법부가 된다.

이어서 묻는다. 대법관 정원을 두 배로 늘린 법률은 대법원의 구성을 어떻게 바꾸는가. 검찰청 폐지와 공소청 전환은 공소 유지의 구조를 어떻게 약화시키는가. 공소취소를 직접 추진한 인물들의 경로는 어디로 이어지는가.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 압박은 무엇을 겨눈 것이었는가. 대법관 제청권을 둘러싼 공격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따로 보면 각각 독립된 정책처럼 보이지만, 한 사건의 궤적 위에서 보면 같은 유인 구조로 수렴한다.

법관이 계산을 시작한 법정에서, 법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누가 보호하는가.


참고 출처

  • 뉴스핌, 2026-07-24, 경찰청 집계. 불송치 483건(9,326명), 타기관 이송 28건(60명), 수사 중 301건(3,506명). 송치 0건은 접수 건수 합산으로 산술 확인된다. 피의자 수가 실인원인지 연인원인지는 원자료에 밝혀져 있지 않다.
  • 파이낸셜뉴스, 2026-05-11. 법원행정처 태스크포스 구성. 직무소송 지원센터는 검토 단계이며 설치 확정은 아니다.
  • 한석훈, 문화일보 포럼, 2026-08-19. 필자가 든 '현직 법관 6분의 1'은 실제 재직 인원을 분모로 삼은 것으로 보이나 분모가 기고문에 밝혀져 있지 않다. 「각급 법원 판사 정원법」상 판사 정원 3,584명 기준이면 529명은 14.8%(약 7분의 1).
  • 「정부조직법 일부개정법률」(법률 제21065호), 「공소청법」(법률 제21490호), 「형사소송법 일부개정법률」(법률 제21857호). 검찰청 폐지·공소청 출범·검사 직접 보완수사 근거 삭제, 모두 2026-10-02 시행. 국가법령정보센터 확인.
  • 서울신문, 2026-02-27, 독일 법왜곡죄(형법 제339조) 적용 사례.
  • 경향신문, 2026-07-15.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반부패수사대, 처분일 2026-07-02. 각하 사유: 형벌 불소급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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